디아도코이 헬레니즘 제국이 분열되다
디아도코이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부하였던 장군들이 제국을 분할하여 통치했던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로 “후계자”를 의미하는 디아도코이(Diadochi)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헬레니즘 제국을 수도 없이 쪼개고 다투게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할 당시 적자가 없었습니다. 다만 알렉산더의 아내인 록사나의 뱃속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아들이 태어난다는 보장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알렉산더의 형제인 필리포스 3세가 있었고, 알렉산더의 사생아 헤라클레스가 있었지만 정통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결국 장군들은 정복한 광대한 영토를 나누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토에는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페르시아와 인도에 이르는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일부가 포함되었습니다.
1. 디아도코이 과정
1) 후계자의 부재
알렉산더 대왕은 워낙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왕위를 계승할 적자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아내는 한참 임신한 상태였고, 태어날 아이가 사내아이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후에 태어난 아이는 아들로 알렉산드로스 4세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당시엔 알 수 없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휘하에는 많은 유능한 장수가 있었고 각자가 정복 전쟁에서 공적이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자신이 이득을 취하는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 알렉산더 휘하의 장수들
알렉산더가 죽음을 맞이할 때 함께 있었던 주요 인물들과 외부에 있었지만 제국에서 위상이 높았던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을 주축으로 디아도코이로 인한 분쟁이 심화됩니다. **샤트라프는 제국의 특정구역 지휘관을 의미(페르시아에서 유래)
- 페르디카스: 최정예부대 헤타이로이 지휘관으로 최고 선임
- 멜레아그로스: 정예부대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 프톨레마이오스: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이집트를 지배.
- 레온나토스: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 리시마코스: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마케도냐 일부와 그리스 본토 지배.
- 셀레우코스: 히파스피스타이 지휘관. 시리아와 동쪽 지역을 지배.
- 페우케스타스: 페르시스의 샤트라프
- 에우메네스: 왕실 서기관이자 헤타이로이 지휘관, 유일한 그리스인
아래는 알렉산더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는 없었지만 제국의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 안티파트로스: 장군들 중 최연장자로 본국의 섭정이었음
- 카산드로스: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 크라테로스: 페제타이로이 최선임 지휘관으로 길리기아에 체류 중이었음
- 폴리페르콘: 크라테로스의 부관, 길리기아에 체류
- 안티고노스: 브루기아의 사트라프.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배
- 데메트리오스: 안티고노스의 아들
디아도코이는 알렉산더 이후 세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위의 인물들은 제국 내 영향력이 있었고, 행운만 따라준다면 누구라도 제국을 휘어잡을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유력한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더 대왕의 사생아나 뱃속의 아이로는 제국을 이어받을 수 없었습니다.
3) 디아도코이의 주요 세력
안티파트로스: 그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섭정이자 감독관이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처음에는 제국의 섭정으로서 페르디카스를 지지했지만 나중에는 권력 투쟁의 주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인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페르디카스: 그는 알렉산더가 죽은 후 제국의 섭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알렉산더로부터 직접 받은 왕의 인장이 있었습니다. 인장 반지는 왕 부재시 왕을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리키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위는 다른 디아도코이에게 도전을 받았고 결국 기원전 321년에 암살당했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알렉산더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자이면 왕으로 옹립할 계획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Ptolemy I Soter):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저명한 통치자들과 함께 거의 300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습니다.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 셀레우코스는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및 중앙 아시아 일부를 포함하는 셀레우코스 제국을 세웠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그리스 문화의 확산과 그리스 전통과 페르시아 전통의 융합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무스: 안티고누스는 소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통제했으며 그의 통치 아래 알렉산더의 제국을 재통일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다른 디아도코이와 충돌하여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알려진 일련의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아나톨리아 지역을 기반으로 셀류커스와 함께 가장 큰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2. 디아도코이의 결과
이 디아도코이들은 그들의 후계자들과 함께 분열된 제국을 통제하기 위해 빈번한 갈등과 권력 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디아도코이 상태는 300년 가량 지속되어 다음 패권 국가인 로마가 지중해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알려진 갈등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헬레니즘 세계의 정치적 지형을 재편했습니다.
디아도코이가 세운 헬레니즘 왕국은 그들이 통치한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분열되었지만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려는 알렉산더의 정책을 이어갔고 그리스 도시 국가를 모델로 한 도시를 세웠으며, 이곳은 학습, 상업 및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및 기타 지역 문화가 혼합되어 활기차고 다양한 헬레니즘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Diadochi 왕국은 외부 침략, 왕조 투쟁 및 문화 동화를 포함한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마지막 헬레니즘 왕국인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함께 기원전 30년에 로마인들에게 함락되어 디아도코이 시대가 끝나고 지중해 동부에서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